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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4일 금요일 사당모임

업무냐 친구냐 의 갈림길에서
일정 마감이 임박한 업무냐 각박한 인간관계에서 그나마 얼마 안 남은 친구냐 의 갈림길 이라면...
ㅡㅡ;;;
그렇게 해서 나온 선택이라면 나름 보람이 있어야 하지만...
ㅜㅜ;;;
10년도 더 된 나도 모르는 나의 비리들이 폭로 되는 관계로 상당히 곤욕스러웠다...
13년 전의 나의 모습은 상당히 쓰레기 였던...쿨럭~

ps : 각자 한명씩 돌아가면서 수십장의 사진이 찍혔지만, 그나마 건질수 있는 사진들은 10여쯤?
      전국민의 전문화가 필요할듯...
ps2: 그리고 사당의 파라오는 좌석들이 너무 따닥붙어 사진을 마구~ 날리기는 좀 버거웠다...



by 빠른곰 | 2008/04/10 01:30 | 트랙백 | 덧글(0)

수원 화성 야경


400D + EF18-55 F3.6~4.5 USM + 28-75 F2.8

by 빠른곰 | 2008/04/10 01:22 | 사진들 | 트랙백 | 덧글(0)

부산의 텃새들 - 지빠귀, 종달새, 동박새, 기타 잡새

사용기기 :
400D + 시그마 APO DG 70-300mm F4~5.6

짤막 일화 :
아래의 새들은 부산 태종대에서 찍었습니다. 처음엔 종달새로 알고 찍었는데, 검색하니 지빠귀랑 더 닮았군요...
그런데 지빠귀는 철새라고 하던데... ㅡㅡ;;;;

여튼, 요즘엔 종달새가 귀한지 이미지 검색해도 외국종만 나와서 그림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누가 보고 알고 계시면 댓글 좀... ㅎㅎ

중간에 하얗게 눈화장한 조그만 노란새는 대표적 한국의 텃새인 '동박새'
희한하게 동백꽃의 꿀을 좋아 한대나... 참고로 태종대는 동백꽃 군락지로 유명한 곳임.



by 빠른곰 | 2008/02/14 01:26 | 트랙백 | 덧글(0)

부산의 절경들 - 광안대교

사용기기 :
400D + 캐논 18-50mm USM , 탐론 28-75mm F2.8

by 빠른곰 | 2008/02/14 01:04 | 사진들 | 트랙백 | 덧글(0)

남대문을 돌아 보면서...

" 남대문이 국보 1호가 된것이 일본 왜장의 서울입성을 기념하기 위해 일제가 정한것이라는데, 맞나요? "

라는 글이 네이버 지식인에 올라왔었다. 알고 있던 상식으로는 단순히 서류상의 기재 때문에 1번이 된것이고,
지금에 와서는 남대문이 가지는 상징성만 고려하더라고 충분히 1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아니다' 가 정답이라 생각했는데,
실상 많은 사람들이 '맞다' 라고 답을 달았다.

아래는 그에 대한 나의 글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아닙니다.
국보 1호로 지정된 이유는 한 때,
일본 유학생이 2002년에 서울대 석사 학위 논문 <일본의 식민지 조선에서의 고적조사와 성곽정책> 에서
숭례문은 임진왜란때 왜군 장군이 처음으로 지나 갔다고 해서 그 기념을 위해
1934년에  보물 1호로 지정되었다고 처음 언론에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일제시대의 총독부에서 우리나라의 고적과 보물들을 정리하면서 편의를 위해
서울에 있는 고적중에 하나로 선택했다는것이 정답니다.
그러니까 지금의 국보 1호는 동대문도 될수 있었고, 남대문도 될수 있었고  보신각도 될수 있었고, 토성도 될 수 있었지요.

사실상 일제시대의 체계를 그대로 답습한 국보와 보물 체계에서  그것도 편의상 순서를 매기다 보니 지금의 남대문이 1번이 되었다고 보는것이 맞는것이지요.

이것에 대해서 거꾸로 논증해 볼 수 있는것이, 실제로 일제시대에는 임란때 왜군장수가 처음 입성한 그 귀한 대문을, 남대문을 단지 교통불편을 이유로 해체 고려를 했다는 기사가 동아일보 1926년 7월 4일자에 있었습니다.

게다가 일제가 약탈을 목적으로 특별히 관리 했던 '고적급유물등록대장(古蹟及遺物登錄臺帳)'이란 장부에서도 남대문은 없었다고 합니다.

사실상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도 공무원들의 철밥그릇 근성으로 인해 일제의 보물 1호 -> 국보 1호 로 되었다고 보는것이 정답이지요.

하지만, 지금의 국보 1호는 단순히 그 유적의 의미나 가치 뿐만 아니라  상징성에도 많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해외에 한국을 알리게 된 88올림픽에서도, 관광유치 광고에서도, 기타 여러 해외 방송에서도 남대문은 꾸준하게 등장하면서 외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상징으로 남대문의 영향력이 가장 컸던 것이지요...
그 상징성 만으로 국보 1호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인도, 일본인도, 미국인도, 인도인도, 러시아인도 모두모두 남대문 앞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제가 직접 찍어준 사람들도 꽤 됩니다.
참 아쉽습니다.

 

아!, 그리고 숭례문도 되지만, 남대문이라고 불러도 되는것은 아시죠?
조선왕조실록에도 여러차례 언급되어있습니다.

아래는 다른분의 블로그에서 긁어 왔습니다. ㅎㅎ

 

그 유명한 왕과나의 트러블메이커인 '어우동 사건'의 성종실록을 살펴보자.

성종실록 13년 8월 8일
지사 이극중이 말하길 수산수는 남대문 밖에서 그네뛰는 어우동을 만나서 간통하였습니다. 

라고 나온다. 그뿐인가.


순조실록 1년 5월 20일
동대문과 남대문에서 누군가가 와서 언문 서찰을 입직하는 금군에게 주었습니디.


조선왕조실록 조금만 뒤져보면 이런거 태반으로 수두룩하게 나온다. 이런거 한번 살펴보지 않고 역사에 대한 지식은 한치도 가지지 않은채 자기만의 얄팍한 지식으로 일재잔재 어쩌고 저쩌고라고 떠들고 있는 것이냐. 그렇게 외친 놈도 한심하고, 그것을 믿고서 남대문이라고 하는 이를 '일재 앞잡이야'라고 매도하는 이도 한심하다. 
 


어찌 백성들이 모든 문의 이름을 다 알아서 그렇게 다 불렀겠는가 말이다. 사대문의 각 대문의 이름을 아는 이는 몇이고, 사소문의 각 소문의 이름을 아는 백성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리고 살기도 바쁜데 굳이 그런 것을 어찌 다 외우고 살겠는가. 
 

사소문의 하나인 동소문의 본래 이름은 무엇인가? 혜화문이다. 하지만 일반 백성들은 그저 동쪽에 있는 소문이다 하여 동소문이라고 부른 것이다. 그것도 역시 일제의 잔재라고 말할 터인가.

여튼 어쨌든, 이글이 사장되어도 안되어도 좋습니다.
대신에 많은 사람들이 앞 뒤 관계를 제대로 알고 얘기 했으면 좋겠습니다.
단순히 언론과 포털에서 나오는대로 믿고  생각도 없이 다시 전달하고, 그게 다시 왜곡되는 그런 악순환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생각없이 정보를 자기 시각으로 가공하는 우리나라는 언론부터 너무 무식합니다.

아래는 남대문을 추억하면서 작년에 찍었던 사진들을 사이즈 조정만 해서 올려봅니다.
400D + 시그마 APO 70-300mm  입니다.




by 빠른곰 | 2008/02/14 00:51 | 사진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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